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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남위 74도'… 영하 37도 남극대륙서 장보고를 꿈꾸다
제목 '여기는 남위 74도'… 영하 37도 남극대륙서 장보고를 꿈꾸다
작성자 김민정 (ip:)
  • 작성일 2019-02-05 19: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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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내려다본 남극 대륙. 장보고기지로부터 남서쪽으로 200여km 떨어진 상공에서 내려다본 빅토리아랜드 산악지대다.[연합뉴스] 지구의 남쪽 끝, 남극대륙은 지금 24시간 해가 지지 않는 백야(白夜)의 세상이다. 이곳에 한국의 과학기지가 두 곳 있다. 남위 62도의 킹조지섬에 있는 세종기지와 극점에 더 가까운 남위 74도에 있는 장보고기지가 그곳이다. 장보고기지는 1월 ‘한여름’에도 평균 기온이 영하 2도다. 수개월간 밤만 계속되는 극야(極夜)의 겨울이면 영하 37도에 초속 39m의 광풍이 부는 곳이다. 이곳에 한국 과학자 등 월동대원 17명이 상주하고 있다. 이들은 1년간 기지에 살면서 남극의 기후와 환경ㆍ자원 등에 대해 다양한 실험을 한다. 중앙일보는 디지털 특별기획으로 지난해 11월 장보고기지에서 돌아온 5차 남극장보고과학기지 대장 유규철 박사의 ‘남극일기’를 연재한다.

눈밭 위 파란색이 유난히 돋보이는 장보고 기자 앞에 선 유규철 대장. [사진 극지연구소]




[유규철의 남극일기] ① 장보고를 꿈꾸다.


나는 2018년 5차 남극장보고과학기지(이하 장보고기지)의 대장으로서 16명의 대원과 약 13개월(2017.10-2018.11) 동안 남극을 경험하고 돌아왔다. 남극에서 국내로 돌아온 지 겨우 두 달. 2년 전 봄으로 돌아가 장보고기지 대장으로 임명되었을 때를 떠올려본다. 매년 한국극지연구소는 장보고와 세종기지의 대장을 임명하는데, 나도 언젠가 맡아야 할 대장 임무를 어디에서 할까 항상 고민하였다. 하지만 2017년 5차 월동대장 공모에 빈자리가 생기면서 나는 우연한 기회로 일말의 고민도 없이 장보고기지를 책임지게 되었다.
사실 약 20년 전에 처음으로 세종기지를 방문한 이후로 지금까지 연구원으로 매년 겨울(남극은 여름)에 보통 1-2개월씩 남극에 가고 온다. 남극이 나에게 그저 평범한 일상이다 보니 일 년을 남극에서 지낸다고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찾아온 장보고기지 월동은 조금 남달랐다. 우선 2014년 장보고기지가 세워진 이후로 내가 2015년 아라온호를 통해 장보고기지에 도착해 한나절 방문한 것이 전부였다. 남극에서 보낸 세월이 그리 짧지 않은데도 남극대륙에서도 신생 기지에 속한 장보고기지가 낯선 것은 당연할지 모른다.

남극대륙에 있는 세계 각국의 과학기지. 장보고 기지는 사진 아래쪽에 있다. [사진 극지연구소]


장보고기지를 꿈꾸게 된 2017년 봄부터 가을을 지나 우리나라를 떠나야 할 시간이 다가오면서 장보고기지는 더는 꿈이 아닌 현실이 되어갔다. 나는 대장으로서 5차 기지 운영에 대한 전반적인 계획과 목표를 어떻게 세우고 이루어갈지 생각해야만 했다. 그런 가운데 한 가지 의문이 계속 마음속에 남아있었다. 장보고기지 바로 그 이름이었다.
지금까지 다른 나라 사람들이 처음 세종기지를 방문하거나 우리나라 기지를 알고 있을 경우, 가장 많이 묻는 말들 중 하나는 세종이 무엇인지 알려달라는 것이다. 굳이 이렇게 묻는 것은 남극대륙의 기지들이 거의 인물 아니면 지역명이 앞에 붙기 때문이다. 장보고기지는 우리나라 남극대륙 연구의 전초 기지로서 해외 협력 과학자들이나 다른 기지 관계자들이 수시로 드나드는데, 아무래도 가장 기본적인 질문으로 장보고가 무엇인지 물어볼 거라 생각되니 내 지식 안에 있던 장보고 이상의 정보가 필요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나라 두 번째 기지를 왜 장보고라 했는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장보고기지. 남위 74도 37분, 동경 164도 12분에 위치한다. 서울에서 1만2740km 떨어진 곳이다 [연합뉴스]


드라마 ‘해신’으로 친근하게 다가온 신라시대 장수 장보고. 우리나라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중국과 일본의 과거 역사서에 남아있는 그의 일대기를 통해 그가 우리나라 역사상 드문 국제적인 인물임을 잘 알 수 있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서역을 포함해 당나라와 일본을 아울러 해상무역을 주도했던 적이 있었냐고 묻는다면, 9세기 중엽 장보고가 강력한 해상 무력을 바탕으로 전남 완도(당시 청해진)를 중심으로 신라, 당나라와 일본을 연결하여 해상무역을 주도하였던 시기밖에는 없었다. 15세기 포르투갈·스페인이나 영국이 어떻게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당시 세계의 해상 무역을 누가 장악하였는가가 제국의 흥망성쇠를 좌우하였기 때문에, 장보고의 활약이 당대에 끝난 것은 너무나 아쉽다.
그렇다면 장보고기지는 무엇을 위해 세워졌는지 나름대로 생각해볼 수 있다. 동북아 해상 무역의 중심지였던 청해진처럼 장보고기지는 호주·뉴질랜드 그리고 우리나라를 연결해 남극대륙 연구의 중심이 되고 싶어하지 않을까. 실제로 우리나라 쇄빙연구선 아라온호의 중간 보급 장소들로 호주 태즈메이니아 호바트와 뉴질랜드 크라스트처치가 이용되고 있다.

장보고과학기지 5차 월동대원들이 기지 앞에 섰다. [사진 극지연구소]

동북아 해상왕이었던 장보고가 어떤 미래를 꿈꾸었는지 잘 모르겠다. 그의 부정적인 말년이 나의 뇌리를 떠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신라의 하찮은 신분으로 중국 당의 입지적인 인물이 되어 신라로 돌아와 남해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가 드디어 찾은 청해진을 바라보면서 그는 분명히 이상적인 꿈을 꾸었을 것이다. 나는 장보고기지가 그 꿈의 연장으로 이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2017년 10월 18일 5차 월동대 출정식을 맞이하면서 내 옷깃을 더욱 감싸며 우리나라 남극대륙 연구의 꿈을 지탱해줄 장보고기지의 임무를 맡을 준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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